“사일런스 Slience”
(감독: 마틴 스코세지, 2017)
영화 추천
신앙이 있다라면 한번쯤은 봐야하는 영화입니다. 2시간 40분이라는 긴 시간이 짧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사일런스(Slience)”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한국말로 하면 침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목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이야기는 17세기의 일본으로 선교를 떠난 페레이라 신부의 실종 소식을 들은 두명의 제자 신부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당시의 일본은 천주교 박해가 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치 한국의 역사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점에서 왜 저런 박해를 받는 지 이해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본이라는 복음의 미 개척지로 갔습니다. 묘사된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은 조금 지저분하지만 신실한 자들로 묘사가 됩니다. 그렇기에 박해가 더욱 심해집니다.
하루는 영주가 찾아와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테스트를 합니다. 예수님의 그림이 그려진 판을 밟는 것과 십자가에 박히신 예수님에게 침을 뱉으라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에서도 기치지로라는 인물을 통해서 배반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3명의 사람들은 십자가에 묶여서 죽게 됩니다. 이정도의 일은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갈수록 그러한 박해는 더 심해지게 됩니다.
영화의 주인공 신부인 ‘로드리게스’는 자신을 따라다니던 ‘기치지로’에게 은화 300냥으로 팔리게 됩니다. 마치 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장면과 곂쳐보였습니다. 이 인물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용서를 구하는 인물로 묘사가 됩니다. 그 모습을 볼 때 저라고 과연 그와 다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입자에서 생각을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났습니다. 이미 자신을 팔 것이라고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팔 유다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화를 내셨을지, 용서해주셨을지 그것은 모르는 것이지만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 자들도 사랑하고 품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게 잡히게 된 ‘로드리게스’는 영주로부터 그 땅에서 새로이 신자가 된 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그리스도를 배반하라고 강요받습니다. 영주는 이제껏 많은 사람들을 박해를 한다고 한들 믿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더욱 굳건해지는 것을 보았기에 그들의 지도자격인 선교사를 직접 배반하게 한다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 이외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고 같이 온 신부도 강요를 받다가 순직합니다. 그러한 과정들 속에서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갔고 그 의지는 흩어져 갔습니다. 주님의 도움이 절실한 순간에 주님에게 간절히 구할 때에 어떠한 답변을 해주시는 것이 아니기에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심정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의 스승인 페레이라를 만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는 부처님의 아래로 개종하여 일본인으로써 살고 있었고 하나님을 배반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크나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영적 스승이라는 자가 배반을 했고, 더군다나 자신에게 꼬득임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지도 모르고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일본으로 건너왔는데 허무함이 클 것 같습니다. 이후에 자신과 같이 갇혀있는 자들이 자신 때문에 거꾸로 메달려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페레이라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기도를 하면 무언가 달라지는가 고통만 느낄 뿐이다”라고 고통과 절망을 느끼며 이러한 상황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믿음을 흔듭니다.
결국 주인공 ‘로드리게스’도 그자들을 구하기 위하여 배반을 하게 됩니다. 솔직히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수를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믿음을 내버려야 하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끝까지 믿음을 고수하며 끝나지 않을 지옥을 견디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상황이셨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다는 것이 아닌 그와 관련된 자들이 매달리고 죽는 것을 반복한다고 한다면 성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에 “알리 알리 사박다니”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인지라 이러한 고통에도 원망을 표할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 결정을 하고 답을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그러한 상황이 온다면 제가 과연 배반하지않고 그렇게 굳굳이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곘습니다.
주인공이 배반한 장면을 보면 성경속에서 베드로가 3번 부정한 것이 생각납니다. 찰나의 순간에 배반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기치지로’가 나옵니다. 항상 배반후에는 회개의 시간을 갖지만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는 모습을 볼 수 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도 다 용서하시고 함께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주님을 고난가운데 그냥 지켜보시기만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중에서는 그러한 생각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고난 가운데 존재하시고 옆에서 같이 고민해주시고 들어주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저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만은 압니다. 하지만 들어주시는지 응답해주시는지 그 여부조차 모르는 데에 어찌하여 믿음이 생기고 내 모든 것을 다 바칠만큼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이 영화는 그러한 모습들을 잘 표현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난가운데 약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청자로 하여금 생각의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정말 순전히 믿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떠한 것을 인지한다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의 차이가 있듯이 말입니다.
영상 끝자락에서는 배반을 한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살아온 모든 것이 당신의 증거입니다.” 물론 영화는 그러한 과정을 세세하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형식을 띄지만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하나님께서 다 보고계시며 같이 아파하신다고 말하면서 저런 말을 하게 됩니다. 이 말이 진짜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제 삶에 의구심이 들 때에 이 구절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제 안에서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제 믿음이 여기까지인가 싶기도 하고 왜 저러한 상황이 온다면 하나님을 배반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허무합니다. 오히려 저보다 ‘로드리게즈’ 신부가 훨씬 더 믿음이 강할 터인데 그런 그도 무너지지 않았는가 싶기도 합니다. 저런 상황일 때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배반하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은 알지만 나 떄문에 다른 이들이 고통을 받고 죽는다면은 제 믿음을 고수해야 하는 것인 지 베드로처럼 부인을 해야하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침묵으로 들린다면 제 자신의 믿음이 부족한 까닭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Slience라는 제목은 그러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했고 이 여운이 조금 오래갈 것 같습니다. 좋은 영화 추천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이것으로 저의 영화 보고서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